치료를 넘어 ‘존엄을 지키는 의료’ 실천

  • 등록 2026.04.07 14: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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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랑 정신’ 바탕한 환자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저는 전환기일수록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빠르게 변하되,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세우는 것. 그것이 지금 의료원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믿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되 중심은 잃지 않는 것. 기술을 도입하되 사람을 잊지 않는 것. 임기 동안 저는 그 균형을 지켜내는 의료원장이 되려고 합니다.” 순천향대 이정재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의 말이다. 이 의료원장은 순천향의대를 졸업하고 산부인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 순천향대 서울병원에서 무수혈 및 환자혈액관리센터장을 비롯해 부원장과 병원장, 중앙의료원 기획조정본부장을 역임하는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며 탁월한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1월 순천향대 의무부총장 겸 중앙의료원장에 취임했다.


Q 지난 3월 서울시병원회와 신풍제약이 공동으로 제정한 'SP 자랑스런 병원인상 CEO 부문 대상'을 수상하신데 대해 다시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COVID-19 위기 대응, 이태원 사태시 발빠르게 대응한 것으로부터 최근 의정 공백기까지 현장을 지켜오신 공로를 인정받으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갖습니다만, 의료원장님의 수상 소감과 함께 그간의 소회를 들었으면 합니다.
우선, 이렇게 과분한 상을 받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수상은 저에게만 주어진 영예라기보다, 위기의 순간마다 묵묵히 현장을 지켜준 순천향 가족들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COVID-19 펜데믹과 이태원 사고, 의정사태 등 여러 변화와 혼란 속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준 우리 순천향 가족들의 헌신이 있었기에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COVID-19 펜데믹 당시에는 감염병 전담병상 운영, 중증환자 치료체계 구축, 의료진 보호 대책 마련 등 매 순간이 선택과 결단의 연속이었습니다. 또한 이태원 사고 당시에는 신속하게 응급 대응 체계를 가동하며 사고 수습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의정사태가 지속되는 동안 경영인으로서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의정사태가장기화 되면서 진료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저희 병원은 ‘인간사랑’ 정신을 바탕으로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전공의 부재에도 필수의료와 중증·응급 진료체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했고, 인력 재배치와 당직 조정 등을 통해 응급실과 중환자실 기능을 유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암·심뇌혈관질환·산모, 신생아 진료 등 생명과 직결된 분야는 별도 관리 체계를 두고 의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특히 저는 설립자이신 향설 서석조 박사님의 좌우명인 ‘질병은 하늘이 고치고 의사는 그 과정을 도울 뿐이다’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제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Q
올해 1월, 순천향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중앙의료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으셨습니다. '순천향 맨'으로서 의료원의 수장이 되신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임기 내 반드시 이루고 싶은 핵심 과제는 무엇인지요?

순천향은 제게 단순한 직장이 아닙니다. 의사로서의 꿈을 키웠던 곳이고, 의료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배운 공간이며, 수많은 환자와 동료 교직원들로부터 겸손과 책임을 배운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요. 그런 순천향에서 중앙의료원장을 맡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인 동시에, 지금과 같이 의료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진 시기에 그 책임을 맡게 되었다는 점에서 무거운 사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의료는 지난 몇 년간, 그리고 지금도 거센 파도를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팬데믹, 정책 변화, 경영 환경의 악화, 인구 구조의 변화까지,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은 과제들이었지요. 그러나 저는 이런 전환기일수록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빠르게 변하되,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세우는 것. 그것이 지금 의료원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임기 동안 가장 중점을 두고자 하는 핵심 과제는 세 가지입니다. 첫 번 째는 ‘인간사랑’이라는 설립 정신 위에 환자 중심 의료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의료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AI, 정밀의료, 로봇수술 등 새로운 기술들이 의료의 지평을 넓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환자의 불안과 두려움을 이해하고 손을 잡아주는 일은 결국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순천향이 치료를 넘어 ‘존엄을 지키는 의료’를 실천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중증·필수의료 역량을 강화하고, 응급 및 공공의료의 책임을 다하며, 지역사회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의료기관이 되고자 합니다.

 

두 번째는 AI와 데이터 기반의 미래 의료 체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제 의료는 경험과 헌신만으로 지속되기 어려운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저수가 구조, 원가 상승,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증가 등은 의료기관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다 정밀하고 과학적인 운영 체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진료 단위 원가 분석, 실시간 경영지표 관리, 그리고 행정 영역에서의 AI 내재화를 통해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여 나가려고 합니다. 다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입니다. AI로 절약한 시간과 에너지를 다시 환자에게 돌려주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미래 의료의 모습인 것이지요.

 

세 번째는 지속 가능한 의료 생태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는 단순한 외형 성장이나 병상 확대만으로 경쟁력을 논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의료원 차원의 통합 전략을 통해 구매·정보·인력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ESG 경영을 강화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의료원 산하 각 병원의 고유한 역사와 강점을 존중하면서도, 하나의 의료원으로서 시너지를 창출하는 체계를 확립하겠습니다. 동시에 정책 변화와 제도 개편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안정적인 기반을 다져 나가려고 합니다.


저는 의료원이 ‘크기’로 평가받기보다 ‘신뢰’로 기억되었         

으면 합니다. “저 병원이라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 “저 조직이라면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의료원, 그것이 제가 그리고 있는 순천향의 미래인 것이지요. 한마디로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기본 위에 혁신을 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되, 중심은 잃지 않는 것. 기술을 도입하되, 사람을 잊지 않는 것. 임기동안 저는 그 균형을 지켜내는 의료원장이 되려고 합니다.


Q 순천향대 서울병원장 시절부터 강조해 오신 'Tri-
Shift(진료·연구·조직문화의 변화)' 전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AI와 임상 데이터를 결합한 '연구 Shift'가 스마트 병원 구축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구체적인 청사진이 궁금합니다.

제가 서울병원장 당시 강조해온 'Tri-Shift' 전략은 교직원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내가 꿈꾸고 희망하는 계획을 이루고, 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도록 ‘전환’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추진했던 전략입니다. 특히 진료, 연구, 문화에서 변화를 추진했는데요. 우선 의료질평가를 상시 관리해서 10회 연속 1등급을 받으며 좋은 결과를 얻었고,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확대했습니다. 연구활성화에도 많은 정성을 쏟았는데요. 연구 부문 강화를 위해 연구부원장 직제를 신설하고, ARO(Academic Research Office-임상시험맞춤형수탁서비스)를 설치해 임상 연구를 위한 인력과 행정시스템을 지원했습니다.


저희 병원은 임상데이터를 많이 갖고 있어서 임상연구에 초점을 맞춰 연구인력과 시스템을 지원하고, AI, 의료기기 등에 대한 연구 활성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온라인 의무기록사본 발급 서비스와 환자용 앱 서비스를 통해 편리하게 예약, 수납 등을 하고 있는데요. 환자용 앱을 통해서는 진료예약 및 조회라든지 검사결과 조회, 진료비용 결제, 의무기록사본 신청, 실손보험청구 등의 진료와 관련한 다양한 서비스를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지난 2022년에는 SK텔레콤과 퇴원 환자 건강관리를 위한 ‘AI기반 돌봄콜’ 업무협약을 체결해서 퇴원환자의 수술 경과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 조치에 대한 도움을 주거나 주요 검사 일정 안내 및 내원 여부를 확인하는 등의 AI기반 돌봄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식회사 씨어스테크놀로지와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활용한 원내환자 활력 징후 모니터링 시범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시범 병동을 대상으로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및 기술 지원 등의 사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2025년에는 카카오헬스케어와 비만 환자 공동연구 및 관리, 디지털 헬스케어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는데, AI 기반 모바일 건강관리 솔루션 파스타(PASTA)를 환자 관리에 활용하고,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한 공동연구도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2025년에는 순천향대학교가 글로컬대학으로 지정되어 “AI의료융합 분야 아시아 TOP1”을 비전으로 4개 병원 의료데이터 통합관리 시스템 구축 및 AI 의료융합모델 개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 순천향대병원이 정밀의료, 바이오 빅데이터, 디지털 치료기기, 원격 모니터링 분야에서 선제적 연구를 수행하고, 미래 의료 산업 생태계의 핵심 허브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수평적 조직문화라고 한다면 간호환경 개선이 첫 번째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은 보조 인력이 있고 교육전담 간호사도 있어서, 신규 직원에 대한 교육이 잘 이뤄지고 결과도 만족스럽지만, 중증환자가 많은 일반 병동은 교육 시스템이나 보조 인력이 부족해, 이를 타계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진료환경 개선과 경영 선순환을 위해 부족한 진료공간과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간호환경과 인사제도 개선에도 힘썼습니다. 또한 조직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MZ세대와의 소통에도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Q
급변하는 의료 환경 속에서 'one Point Up'이라는 유연한 경영 전략을 제시하셨습니다. 거창한 구호보다 실질적인 성장을 강조하신 배경과, 현재 의료계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순천향만의 '성공 방식'은 무엇입니까?

제가 ‘One Point Up’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실천 가능한 목표를 정하고 작은 것부터 이뤄 나가자’는 슬로건을 가슴에 새기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자라는 의미였습니다. 현재의 의료 환경에서는 단기간의 외형적 확장이 더이상 해답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1년 6개월간의 의정사태, 필수의료 인력 문제, 재정 압박 등 복합적 위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혁신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오히려 조직의 체질을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개선하는 전략이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One Point Up’은 진료의 질, 환자 만족도, 연구 성과, 조직문화, 경영 효율 등 모든 영역에서 이전보다 한 단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는 단순히 성과 지표를 올리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나는 오늘 실천 가능한 목표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스스로 묻는 문화, 그것이 곧 경쟁력인 것이지요. 거창한 슬로건 대신 실질적 성장을 강조하는 이유는, 의료기관의 본질이 ‘신뢰’에 있기 때문입니다. 환자와 보호자는 안전하고 수준 높은 치료를 제공받을 때 가장 큰 신뢰를 느낍니다.


우선, 중증 환자 중심 구조로 전환하기 위해 다학제 협진 프로세스를 표준화하고, 진료과 간 의사결정 시간을 단축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환자가 병원을 찾았을 때 ‘빨리, 정확하게, 안전하게’ 치료받는 경험을 만드는 것이 실질적 경쟁력이라고 보기 때문이지요. 재무 구조에서는 ‘비효율 제거’를 핵심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무조건 비용을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중복 투자와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정비해 핵심 진료 영역에 재투자하는 구조로 바꾸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비 도입 시 가동률 분석을 의무화하고, 데이터 기반으로 투자 타당성을 검토합니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전략적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연구 분야에서는 ‘임상 적용 가능 연구’의 비중을 높이고 있습니다. 논문 수 자체보다, 실제 진료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연구를 장려합니다. 임상 데이터를 활용한 후향적 분석 연구, 치료 성과 비교 연구, 진료 프로토콜 개선 연구들을 활성화해 연구 결과가 현장에 바로 반영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는 비용 대비 효과가 분명한 성장 방식입니다.


순천향만의 ‘성공 방식’은 결국 설립 이념인 ‘인간사랑’에서 출발합니다. 환자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문화, 동료를 경쟁자가 아닌 협력자로 대하는 태도,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려는 책임감이 우리 조직의 뿌리입니다. 여기에 현대적 경영 기법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하는 것 또한 우리의 전략인 것이지요.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는 말은 거창해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위기를 통해 조직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환경은 비효율을 방치할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조를 정비하고, 본질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라고 봅니다.


‘One Point Up’은 작아 보이지만, 매년 그 한 단계씩 쌓이면 5년, 10년 뒤에는 분명한 격차가 됩니다. 저는 단기간의 외형 성장을 약속하기보다 매년 실질적인 지표 개선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 축적이 결국 순천향대병원을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리고 신뢰받는 의료기관으로 성장시키는 가장 현실적인 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Q 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 초대 회장 및 아시아환자혈액관리협회 회장을 역임하시며 '무수혈 및 환자 혈액관리' 분야의 개척자로 인정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이 분야에 집중하시게 된 계기와 이것이 현대 의료 질 향상에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요?
저는 ‘무수혈’ 및 ‘최소수혈’에 대해 관심이 많아 무수혈및 환자혈액관리센터장을 역임했고, 관련 논문도 다수 발표했습니다. 특히 산부인과 교수로서 분만과 수술 현장에서 수많은 출혈 상황을 마주해 왔습니다. 고위험 산모, 전치태반, 유착태반, 자궁근종 수술 등에서는 대량 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거에는 출혈이 많으면 수혈을 하는것이 당연한 치료 과정처럼 여겨졌습니다.


물론 수혈은 분명 생명을 구하는 중요한 치료 수단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감염 위험, 면역 반응, 수혈 관련 합병증, 재원 기간 증가 등 다양한 문제를 동반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혈액은 인공적으로 생산할 수 없는, 매우 소중하고 제한적인 자원입니다.


환자혈액관리는 단순히 ‘무수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무수혈을 종교적 선택이나 특수한 치료로 오해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환자혈액관리의 핵심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수술 전 빈혈을 교정하고, 수술 중 출혈을 최소화하며, 수술 후 회복을 촉진해 불필요한 수혈을 줄이는 체계적인 관리 전략이지요. 즉, 환자의 생리적 혈액량과 산소 운반 능력을 최적화하는 전 과정의 관리 시스템인 것이지요.


저는 이러한 개념을 국내에 정착시키기 위해 학회 활동과 제도화 작업에 힘써 왔습니다. 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 초대회장, 대한수혈대체의학회 회장, 대한자궁근종연구회 회장등을 역임하며 표준 진료 지침을 마련하고, 다학제적 접근을 확산시키는 데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환자혈액관리는 특정 과의 영역이 아닙니다. 외과, 내과, 마취통증의학과, 진단검사의학과, 간호부 등 모든 직군이 협력해야 가능한 분야입니다. 또한 아시아환자혈액관리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국제적 협력의 필요성도 절감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은 의료 자원 격차가 크고, 혈액 수급 구조도 상이합니다. 각국의 경험과 데이터를 공유하고, 표준화된 가이드라인을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현대 의료에서 환자혈액관리가 갖는 의미는 크게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환자 안전 강화입니다. 수혈을 줄인다는 것은 단순한 절감이 아니라, 불필요한 의료 개입을 줄이고 합병증 위험을 낮추는 것입니다. 실제로 적정 수혈 전략을 적용하면 감염률, 재수술률, 입원 기간이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의료의 질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수술 전 빈혈 관리, 출혈 최소화 기술, 수술 후 회복 프로토콜은 모두 표준화와 체계화가 필요합니다. 이는 곧 진료 프로세스의 고도화로 이어집니다. 환자혈액관리를 도입한 병원은 자연스럽게 임상 경로가 정교해지고, 팀 기반 진료가 강화됩니다. 그런가하면 사회적 책임 측면입니다. 혈액은 공공 자원입니다. 의료기관이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행위인 것이지요. ESG 경영 관점에서도 자원 효율성과 환자 안전을 동시에 달성하는 대표적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산부인과 교수로서 시작한 작은 문제의식이 학문적, 제도적 변화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멉니다. 환자혈액관리는 특정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 모든 의료진이 공유해야 할 기본 개념이 되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제가 지향하는 목표는 단순히 ‘수혈을 줄이는 병원’이 아니라, ‘환자 안전을 가장 과학적으로 관리하는 병원’을 만드는 것입니다. 환자혈액관리는 그 출발점이자 상징적인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Q
병원이라는 보수적인 조직 내에서 MZ세대와의 소통을 통한 '조직문화 Shift'를 강조하셨습니다. 젊은 의료진 및 직원들의 에너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의료원장님이 실천하고 계신 소통의 기술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병원은 생명을 다루는 조직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위계가 분명하고, 의사결정이 신중해야 하며, 책임의 무게도 큽니다. 그러나 동시에 의료 환경은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 연구 패러다임, 환자의 기대 수준, 직장 문화까지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MZ세대 의료진과 직원들이 있습니다. 저는 MZ세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면서 함께 잘 지낼 수 있도록 소통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실천하고 있는 ‘조직문화 Shift’는 구조를 바꾸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경청입니다. 많은 리더들이 “소통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설명하거나 설득하는 데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되도록 말을 줄이고 질문을 던지려 노력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무엇이 가장 불편한가?”, “어떻게 바꾸면 좋겠는가?”와 같은 질문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그들의 의견이 실제 정책에 반영되는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투명성입니다. MZ세대는 ‘이유 없는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의사결정의 배경과 과정이 공유될 때 신뢰가 생깁니다. 저는 중요한 정책이나 변화가 있을 때 가능한 한 데이터와 근거를 공개합니다.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다른 대안은 무엇이었는지 설명합니다. 때로는 완벽한 해답이 없다는 점도 솔직하게 말합니다. 리더가 모든 답을 알고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지요.

 

세 번째는 참여입니다. 조직문화는 선언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구성원이 직접 변화를 설계할 때 지속됩니다. 단순한 자문이 아니라, 실제 결정권 일부를 위임하는 구조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는 책임감을 높이고, 성과에 대한 주인의식을 강화합니다. 또한 저는 세대 간갈등을 ‘차이’로 규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MZ세대는 워라밸, 공정성, 성장 기회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는 조직을 더건강하게 만드는 요소이지요. 오히려 기성세대가 배워야 할부분도 많습니다. 반대로 젊은 세대도 의료라는 직업의 책임과 사명감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양쪽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조직문화 Shift의 궁극적 목표는 ‘존중받는 병원’을 만드는 것입니다. 환자가 존중받는 병원은, 내부 구성원도 존중받는 병원이어야 합니다. 서로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직군간 벽을 낮추며, 공정한 평가와 기회를 제공하는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조직문화가 곧 경쟁력이라고 믿습니다.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MZ세대의 창의성과 기성세대의 경험이 조화를 이루는 조직, 그것이 제가 지향하는 순천향의 미래 모습입니다. 저는 의료원장으로서 구성원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는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식을 지속해 나갈 것입니다.


Q '인간사랑'이라는 설립 이념을 바탕으로 국내·외 봉사활동과 지역사회 유대관계를 중시해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순천향대학교 중앙의료원이 추구하는 'ESG 경영' 또는 사회적 가치 실현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순천향대학교 중앙의료원이 추구하는 ESG 경영의 궁극적인 목적은 1974년 창립 이념인 ‘인간사랑’을 오늘의 시대 언어로 재해석하고, 이를 개인의 헌신에 머무르지 않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완성하는 데 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순천향을 지탱해 온 ‘인간사랑’은 수많은 의료진과 교직원의 헌신 위에서 실천되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가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따뜻한 마음에만 의존하는 조직이 아니라, 객관적 지표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구조 위에 인간사랑을 정착시켜 흔들림없이 지속 가능한 의료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ESG 경영의 본질입니다. 이는 단순한 외부 평가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조직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중장기 경영 전략인 것이지요.


S, 즉 사회적 가치 측면에서 순천향은 설립 초기부터 의료 취약지와 소외계층을 향해 걸어온 기관입니다. 국내·외 의료봉사와 국제 보건의료 협력, 지역사회 공공의료 기능 강화는 일회성 활동이 아니라 책임 있는 의료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입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는 단순한 지원을 넘어, 의료 접근성의 형평성을 구조적으로 높이는 체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역 완결형 진료 체계를 강화하고, 협력병원 네트워크를 정교화하며, 중증· 필수의료 영역에서 공공적 책임을 다하는 것, 이것이 순천향이 생각하는 S의 방향입니다.


E, 즉 환경 영역에서는 선언보다 실행 가능한 운영 혁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노후 시설의 단계적 개선, 에너지 사용 최적화, 설비 효율 향상, 자원 절감 체계 고도화를 통해 현재의 공간 안에서 환경 부담을 줄이는 실질적인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 차원이 아니라, 미래 세대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책임 경영이자 운영 효율 중심의 지속 가능한 구조로 전환하겠다는 의지인 것이지요.


지배구조(G)의 핵심은 투명성과 객관성입니다. ESG 보고서를 통해 성과를 체계화하고 외부와 공유하며, 경영 판단이 데이터와 통계에 기반해 이루어지도록 원칙을 세우고 있습니다. 명확한 KPI 체계와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 강화는 구성원, 지역사회, 환자와의 신뢰를 더욱 공고히 하는 거버넌스의 기반입니다.


결국 순천향 ESG의 최종 지향점은 ‘인간사랑’을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정착시키는 것입니다. 병원의 존재가 지역사회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그 신뢰와 성과가 다시 조직의 경쟁력으로 환류되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ESG의 핵심 목표인 것입니다.


저는 ESG를 ‘착한 경영’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신뢰 경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간사랑이라는 가치가 시대가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도록, 그리고 그것이 시스템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순천향대학교 중앙의료원이 향하고 있는 궁극적인 방향입니다.
Q
현재 의료계는 대내·외적으로 많은 변화와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후배 의사들과 예비 의료인들에게 선배이자 경영자로서 격려와 당부의 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현재 의료계는 분명 쉽지 않은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정책적 변화, 사회적 갈등, 필수의료 인력 문제, 의료

전달체계 개편 논의 등 복합적인 이슈가 한꺼번에 얽혀 있습니다. 의료 현장에 있는 젊은 의료진, 그리고 앞으로 의료인이 되기를 준비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혼란과 불안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또 경영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그 무게를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의료의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제도가 바뀌고 환경이 흔들려도,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생명을 지키는 일의 가치와 존엄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의료 환경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사회는 의료인에게 높은 전문성과 윤리성을 요구하는 동시에, 투명성과 공공성도 강조합니다. 이런 기대 속에서 젊은 의료인들이 느끼는 부담도 클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위기로만 보지 않습니다. 영어로 위기(crisis)는 상황에 대한 판단, 의사결정, 구분이라는 뜻을 갖는 Krinein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종합해보면 위기는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 대처하기에 따라 긍정 혹은 부정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비 의료인들에게 가장 먼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는지, 어떤 의사가 되고 싶었는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도와 현실에 대한 비판과 고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언제나 환자가 있어야 합니다. 환자를 향한 진심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스스로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경영인의 위치에 있지만, 여전히 한 명의 의료인라고 생각합니다. 병원은 의료인이 마음껏 진료하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젊은 의료인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문화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저의 책임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선배로서, 동료로서, 그리고 경영자로서 함께 고민하고, 함께 나아갈 길을 찾겠습니다.
(정리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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