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래에 14살 남학생 두 명이 왔다. 둘 다 BMI 30 정도로 비슷하게 비만이었다. 그런데 검사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한 아이는 간수치 정상, 혈당 정상, 초음파도 깨끗했다. 다른 아이는 간수치가 130으로 높았고, 당뇨 전단계, 고지혈증에 초음파에서 심한 지방간까지 보였다. 같은 나이, 비슷한 체중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 소아청소년 비만은 이제 가장 흔한 소아 만성질환이다. 그런데 비만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가 바로 비만과 함께 오는 지방간이다. 학교 검진에서 간수치 이상이 나왔다고 찾아오는 아이들이 해마다 늘고 있고, 체감상 거의 매일 진단하고 있다. 지방간은 이제 소아에서 가장 흔한 간질환이 되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류인혁 교수 이름이 바뀌었다: NAFLD에서 MASLD로 2023년, 세계 간학회들이 '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NAFLD)'이라는 이름을 '대사기능장애 관련 지방간질환(Metabolic dysfunction-Associated Steatotic Liver Disease, MASLD)'로 공식 변경했다.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다. 질환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바뀐 것이다. 예전 이름인 '비알코올성'은 술을 안 마셨는데 생긴 지방간이라는 뜻으로, 뭔가를 배제해서 진단하는 방식이었다. 새 이름 MASLD는 대사기능장애라는 핵심 원인을 정면으로 내세웠다. 이 질환이 단순히 살이 쪄서 생긴 간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의 대사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라는 의미다. MASLD는 간에 지방이 쌓인 단순 지방간(steatosis)부터 염증이 동반된 지방간염(MASH, 이전의 NASH), 그리고 섬유화와 간경변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진단 기준은 간에 지방이 쌓여 있으면서 비만, 혈당 이상, 고혈압, 고중성지방혈증, 낮은 HDL 콜레스테롤 중 최소 1가지 이상의 대사 위험인자가 동반된 경우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지방간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소아청소년의 약 7-14%가 MASLD를 가지고 있다. 비만 아동으로 범위를 좁히면 30-50%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비만 아동의 약 40% 이상에서 지방간이 발견되고 있으며, 코로나 이후에는 58%까지 보고된 연구도 있다. 실제 외래에서도 10세 이상 비만 환자들에서는 상당히 흔하게 발견되며, 8-9세 미만에서도 종종 확인된다. 비만의 결과이면서, 비만을 악화시키는 악순환 예전에는 단순히 살이 찌니까 간에도 지방이 쌓이고 염증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비만이 원인이고, 지방간은 결과라는 일방향적 관계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관계를 양방향으로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비만 때문에 지방간이 생기지만, 지방간이 생기면 오히려 비만과 대사질환을 더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기전은 이렇다. 지방이 쌓이고 염증이 생긴 간은 hepatokine이라는 물질들을 비정상적으로 분비한다. 이 물질들이 근육과 지방조직의 인슐린 저항성을 악화시키고, 혈당 조절이 안 되면서 다시 간에 지방이 더 쌓이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스웨덴의 대규모 소아비만 코호트 연구(BORIS, 10,346명)에서는 MASLD가 있는 비만 아동의 제2형 당뇨병 위험이 나이, 성별, 비만도, 당뇨병 가족력과 독립적으로 2.71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Diabetes Care, 2024). 당뇨 전단계까지 동반된 경우에는 당뇨 위험이 더욱 높아진다. 지방간이 있는 젊은 성인에서 심혈관질환 위험이 유의하게 높다는 연구 결과들도 축적되고 있다. 같은 정도로 살이 쪄도 지방간이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의 미래는 완전히 다르다. 지방간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간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이 아이가 대사질환 고위험군이라는 강력한 신호다. 가역성의 창은 생각보다 빨리 닫힌다 MASLD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초기에는 완전히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간에 지방만 쌓인 초기 단계에서 체중을 줄이고 식습관을 바꾸면 간은 다시 정상이 된다. 하지만 염증이 계속되면 간세포가 죽고 딱딱한 흉터 조직(섬유화)이 생기며, 이 단계부터는 정상으로 되돌릴 수 없다. 문제는 진행 속도다. 소아 지방간염 환자를 추적한 연구에서 약 3분의 1이 2년 이내에 조직학적으로 악화됐다. 좀 더 지켜보자, 좀 더 커서 하자고 미루는 사이 가역성의 창이 닫힐 수 있다. 비만 아동이라면 간수치 검사를 해야 한다 최신 가이드라인에서는 모든 비만 아동(BMI 95백분위수 이상)의 MASLD 선별검사를 권장한다. 과체중 아동(BMI 85-95백분위수)도 당뇨 전단계, 이상지질혈증, 고혈압, 대사증후군 가족력 등 위험인자가 있으면 검사를 받아야 한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경우 10-12세 이상에서는 1년에 최소 한 번은 간수치를 포함한 혈액검사를 하는 것이 좋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간수치가 높다고 무조건 지방간으로 단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B형 간염, 윌슨병, 자가면역 간염 같은 중요한 간질환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이런 질환들은 치료 방법이 완전히 다르고, 빨리 발견하지 못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체계적인 감별진단이 필요한 이유다. 작은 변화가 빠른 결과를 만든다 좋은 소식은 생각보다 적은 체중 감량으로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체중의 3-5%만 줄여도 간에 의미 있는 변화가 온다. 80kg 아이라면 2.4-4kg만 빼도 효과가 나타난다. 7-10% 감량하면 염증이 줄고, 10% 이상 감량하면 섬유화 호전까지 기대할 수 있다. 간수치는 다른 합병증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반응한다. 2-3kg만 빠져도 간수치가 눈에 띄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빠른 피드백이 아이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실제로 외래에서 한 달 만에 간수치가 절반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자주 경험한다. 체중은 1-2kg밖에 빠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식습관은 탄산음료와 가당 음료를 끊고, 초가공식품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액상과당이 든 음료는 간에서 직접 지방으로 전환되므로 반드시 피해야 한다. 운동은 처음부터 많이 할 필요 없다. 하루 20분 걷기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늘려가면 된다. 지금 발견하면, 지금 시작하면 된다 지방간을 단순히 살이 쪄서 생긴 문제라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 몸 전체의 대사질환이 시작되고 있다는 강력한 경고 신호다. 같은 정도로 비만이어도 지방간이 있는 아이는 당뇨병, 심혈관질환, 간경변의 위험이 훨씬 높다. 학교 검진에서 간수치 이상이 나왔다면 절대 무시하지 말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아이라면 10-12세부터 매년 간수치 검사를 받아야 한다.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회복력이 훨씬 좋다. 작은 변화부터 시작하면 간은 반드시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