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생화학교실 김정한 교수(공동 교신저자)와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 Jay H. Chung 박사(공동 교신저자) 국제 공동연구팀이 간섬유화를 획기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치료 표적을 발견했다. 간질환 치료의 가장 큰 난제로 꼽혀 온 간섬유화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 전략이 제시된 것이다.
최근 비만과 대사질환의 유병률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대사성 염증을 바탕으로 한 초기–중등도 간섬유화 환자 역시 꾸준히 늘고 있다. 간섬유화는 지방간,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 알코올성 간질환, 대사 기능 장애 관련 지방간염 등 다양한 간질환이 악화되면서 간 조직에 흉터조직(섬유조직)이 과도하게 축적되는 상태를 말한다.
▲김정한 교수(왼쪽), Jay H. Chung 박사
초기 단계의 간섬유화는 체중 감량, 인슐린 저항성 개선, 바이러스 억제 등 병인 치료가 이뤄질 경우, 정상 간에 가까운 형태로 상당 부분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간섬유화가 지속되어 간경변으로 진행되면 비가역적인 조직으로 변형되어 생명을 위협하게 된다. 현재까지 효과가 입증된 항섬유화 약물이 없고 간이식이 유일한 치료 수단이기 때문에 섬유화 단계에서 특이적으로 작용하는 치료 표적을 규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표적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 간질환 치료 전략의 핵심 목표로 제시되어 왔다.
김정한 교수는 간질환 환자의 병기별 전사체 분석을 통해 간섬유화 단계에서 특정 효소인 PDE4D(phosphodiesterase 4D)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한다는 점을 주목했다. PDE4 계열 효소는 세포 내 cyclic adenosine monophosphate(cAMP)를 분해하는 효소로, 다양한 염증성 및 섬유화 질환에서 중요한 조절 인자로 주목받아 왔다. 기존에도 이 PDE4 계열 효소를 넓게 억제하는 약물들이 여러 동물실험에서 효과를 보였지만, 사람에게 투여할 경우 오심·구토 등 부작용이 심해 실용화에 어려움이 있었다.
연구팀은 PDE4 계열의 개별 아이소폼을 정밀 분석한 끝에, PDE4D 중에서도 ‘long isoform(롱 아이소폼)’이라 불리는 형태가 간섬유화 과정에서 특별히 많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이소폼’은 같은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지지만 기능이 조금씩 다른 단백질 형태를 말한다.
특히 이 long isoform은 간섬유화를 일으키는 핵심 세포인 간성상세포가 활성화될 때 크게 증가하며, 콜라겐 생성(섬유조직 형성), 염증 신호 증가, 세포 이동 등을 동시에 촉진하는 ‘스위치’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PDE4D long isoform이 간조직의 염증과 섬유화를 동시에 밀어붙이는 핵심 허브(hub)라는 점을 규명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섬유화만 억제하는 접근이 아니라, 섬유화와 염증을 함께 조절하는 정밀표적을 찾았다는 의미가 크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미국 국립보건원과 Cedars-Sinai Medical Center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PDE4D long isoform만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알로스테릭 저해제(allosteric inhibitor)’를 간섬유화 치료 후보 물질로 제시했다. 알로스테릭 저해제는 단백질의 활성 부위가 아닌 특정 조절 부위(allosteric site)에 결합하여 단백질의 구조적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선택적이고 정교한 기능 억제 하는 장점이 있다. 기존 pan-PDE4 억제제의 부작용 문제를 구조적·기전적 접근을 통해 해결할 가능성을 제시한 셈이다.
김정한 교수는 “중증 이상의 간섬유화는 되돌리기 매우 어려운 질환이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섬유화 단계에서만 선택적으로 증가하는 PDE4D를 새로운 치료 표적으로 규명하고, 이를 겨냥한 알로스테릭 저해제를 통해 섬유화와 염증을 동시에 줄일 수 있음을 전임상 수준에서 입증했다”라며 “이번에 도출된 표적과 후보 물질이 정밀의학 기반 간섬유화 치료제로 발전하여 실제 환자 진료에 사용되는 차세대 항섬유화 신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후속 개발을 지속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미국 국립보건원 간 국제 공동연구로 수행되었으며, 한국연구재단 우수신진연구, 최초혁신실험실, 기초연구실(BRL)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고, 의학 분야의 권위 있는 국제 학술지 《Journal of Clinical Investigation》 최신호에 게재되었다.

[그림 설명 : 간 섬유화 단계 특이적 치료 표적으로서 PDE4D의 역할과
알로스테릭 저해제의 섬유화 조절 기전을 설명하는 모식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