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유래 약 성분은 많지만, 식물이 이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는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KAIST 연구진이 70년 만에 토종 약용식물 광대싸리에서 항암 성분인 `세큐리닌이 생성되는 전 과정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이번 성과로 실험실과 미생물 공장에서 항암 물질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KAIST는 생명과학과 김상규 교수 연구팀과 화학과 한순규 교수 연구팀이 우리나라 자생 식물인 광대싸리에서 항암 효과로 알려진 세큐리닌(securinine) 계열 물질이 만들어지는 핵심 과정을 규명했다고 6일 밝혔다.
광대싸리는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관목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잎과 뿌리를 약재로 사용해 왔다.
▲(왼쪽부터) KAIST 김상규 교수, 한순규 교수
이 식물에는 세큐리닌을 비롯한 다양한 알칼로이드 성분이 들어 있어 신약 개발 가능성이 높은 약용식물로 주목받아 왔다.
세큐리닌은 1956년 광대싸리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130종이 넘는 관련 물질이 보고됐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항암 효과를 보이거나, 뇌로 잘 전달돼 신경 재생을 돕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물질들이 식물 안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지난 70년간 밝혀지지 않은 난제였다.
생명체 안에서 천연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합성’이라고 한다. 이는 최종 물질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중간 단계를 거치고, 어떤 효소가 작용하는지를 밝히는 일이다. 모르핀, 카페인, 니코틴 등 식물이 만들어내는 약효가 강한 천연 성분인 알칼로이드는 구조가 매우 복잡해 생합성 과정을 규명하기 특히 어려운 물질로 알려져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화학과 생명과학의 협력이 핵심 역할을 했다. 세큐리닌 계열 물질의 화학적 합성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한순규 교수 연구팀과, 식물 유전체 분석과 단일세포 분석에 강점을 가진 김상규 교수 연구팀이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김상규 교수 연구팀은 성남시 불곡산 일대의 ‘KAIST 생태림’에서 광대싸리를 확보해 연구 시료를 만들고, 식물의 유전체를 정밀 분석했다. 특히 세큐리닌 생성이 활발한 잎 조직을 대상으로 단일세포 전사체 분석을 수행해, 어떤 세포에서 어떤 유전자가 작동하는지를 세밀하게 추적했다.
한편 한순규 교수 연구팀은 세큐리닌이 만들어지기 바로 전 단계의 물질로 ‘비로신 B’를 찾아내고, 이를 실험실에서 직접 만들어 그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식물 속 효소인 ‘황산전이효소’가 비로신 B를 항암 성분 세큐리닌으로 바꾸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황산전이효소가 단순히 화학 성분을 붙이는 보조 역할이 아니라, 알칼로이드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준 연구 결과다.
김상규 교수와 한순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우리나라 자생 식물에서 얻을 수 있는 고부가가치 천연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분자 수준에서 밝힌 것”이라며 “앞으로 미생물이나 세포를 이용해 항암 물질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다양한 의약학적 응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KAIST 정성준 박사후연구원, 강규민 박사후연구원, 김태인 석박통합과정생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연구 성과는 국제 저명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IF 15.7)에 1월 23일 게재됐다.
이번 연구는 과기부 한국연구재단의 중견 합성생물학, 농촌진흥청 NBT사업단의 차세대농작물신육종기술개발, KAIST 생태연구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광대싸리 식물(AI생성 이미지

▲유기화학과 단일세포전사체 분석을 통한 생합성 경로 규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