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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인술로 섬긴다

봉사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서로 돌봐주는 서로의 선행

“모든 환자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귀한 존재로 대하는 것, 고통받는 이웃에게 ‘누군가 나를 위해 시간과 마음을 써 준다’는 경험을 느끼게 해주는 것, 어려운 이웃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눔으로 하나님 나라의 사랑을 전하는 것, 완벽한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해도 환자가 살아가는 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자신의 삶이 소중하고 더 나은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해 주는 것,


바로 이것이 의사로서 가질 수 있는‘의료봉사’의 의미가 아닐까요.”
대한기독여자의사회 정미라 회장의 말이다. 정미라 회장은 이화의대를 졸업하고 이화대와 고려대 대학원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정미라 회장은 대한병원에서 진단검사의학과 과장으로 30년 동안 재직하면서 전국의 무의촌과 양노원 등을 찾아다니며 국내 의료봉사 활동을 벌였고, 몽골 울란바토르 의료선교사업, 필리핀 바세코 이나레스지역 의료사역 등 해외의료사역 역시 활발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지난 8월에도 기독여자의사회 회원 36명과 함께 필리핀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런 봉사활동으로 얼마 전 모 일간지와 가진 인터뷰 자리에서 했다는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사는 자가 중요하다“는 말이 다른 무엇보다도 마음에 와닿는다.

 

Q
이렇게 회장님을 만나 뵙게 되어 대단히 반갑습니다. 먼저 대한기독여자의사회에 대한 소개의 말씀을 해주시지요.
바쁘실텐데 이곳까지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시네요. 저희 단체는 다른 곳과는 달리 재정적으로나 회원 수에 있어서 다소 열악한 면이 없지 않지만 회원 한 분 한 분이 가지고 있는 철학이나 의지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앙에 근거한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차 있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질문에 대한 답변보다는 이 첫 번째 질문, 저희 단체에 대한 소개의 말씀를 자세히 해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저희 단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지향점이며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저희 대한기독여자의사회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의 극히 혼란스럽고 어지럽던 1948년, 캐나다 여의사인 ‘플로렌스 제시 머레이’ 선교사가 김희애, 한소제, 차인실 등 우리 믿음의 선배들과 함께 힘을 모아 창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들이 당시 기독여자의사회를 설립한 것은 여의사들이 함께 모여 서로 돕고, 실력을 증진하며 더 나아가 예수님의 삶을 따라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도록 격려하자는 거룩한 뜻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지요.


전해 듣기로는 ‘플로렌스 제시 머레이’ 선교사님은 1921년 여자의 몸으로 머나먼 캐나다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낯설은 이국 땅인 이 나라에 발을 딛인 후 오지 중 오지라고 할 수 있는 함경도와 간도 땅을 두루 다니시며 헌신적으로 환자를 진료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을 전하셨다고 합니다. 머레이 선교사님의 이런 행적은 당시 일제의 눈에 나서 1942년 추방을 당하셨다가 해방 후인 1947년 이화의대 설립을 돕기 위해 다시 우리나라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이 후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선교부의 결정에 따라 1년 동안 우리나라를 떠나셨던 것을 제외하고는 1969년 모국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특히 어려운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섬기셨다고 합니다.
머레이 선교사님 뿐만 아니라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일을 수행해 온 회원들 가운데는 사회적으로 크게 두각을 나타내신 분들이 적지 않아요. 저희 단체 2대 회장을 역임하신 김애희 선배님은 일제 당시 독립운동에 헌신하셨고, 현재의 걸스카우트연맹인 대한소녀단을 창설하신 3대 한소제 회장님, 9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을 돌보신 한원주 회원님, 우리나라 최초로 해외의료선교를 주관한 송순옥 회원님 등은 우리 회원 모두의 자랑이기도 하지요. 지금도 저희 단체에 소속된 대부분의 회원들이 각자자신들이 속한 교회를 비롯해 의료선교팀, 굿피플, 소록밀알회, 아프리카미래재단. 워드조이너스, 지구촌구호개발 연대, DFI와 같은 수많은 구호단체들에 소속되어 활발하게활동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독여자의사회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각시대마다 한국사회의 주변인물, 즉 가난한 자들이 누구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서울의 변두리 빈민지역을 비롯해 멀리 경기도 지역까지 지역 교회들을 중심으로 무료진료를 다녔습니다. 90년대에 들어 와선 무료진료활동 뿐만 아니라 탈북자나 외국인 이주노동자 그리고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진료로도 확장되었습니다.


1970년대 이래 여러 대형교회에서 의료선교회를 조직하여 무의촌진료들을 했는데 저희 회원들의 대부분이 이 진료 활동에 참여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어 저희 단체 봉사활동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지요.


Q 76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이어받은 대한기독여자의 사회를 지난 2년 동안 이끌어 오시는데,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이 단체를 이끌어 오셨으며, 지난 2024년 취임을 하실 때 말씀하셨던 ‘사랑’과 ‘화목’, 그리고 선·후배 간의 존중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하셨는지 말씀해 주시지요.
제가 회장으로 취임을 할 때 가장 먼저 다짐한 것이 바로 ‘공동체성’이었습니다. 어느 단체든 오래 지속되려면 사명감만큼이나 내부의 관계가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선배와 후배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 사랑과 화목이 넘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저의 첫 번째 목표였던 것이지요. 이를 위해 저희 기독여자의사회는 월례모임과 강좌를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교제의 장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사정으로 봉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회원들도 모임에 와서 서로의 삶을 나눔으로써 선배 의사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전통이 조성되었지요. 예를 들어 좋은 강사를 모셔서 은혜로운 예배가 되도록하고, 월례회가 같은 학교를 나온 동창들은 아니지만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의사 선·후배 간의 친교모임으로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 되도록 프로그램을 준비함으로써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실 때 ‘오늘 참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는생각이 들도록 노력을 했지요.


그런가하면 해외봉사 때 체력적으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노령의 회원인 경우 ‘당신의 마음이 봉사’라는 말씀을 드리며 동행의 기회를 드리기도 했고요. 그것은 제나름대로 ‘봉사는 나이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Q
오랫동안 국내·외에서 무료진료 등 의료봉사활동을 벌여 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회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봉사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며, 이런 봉사경험이 회장직을 수행하시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시는지요.
저는 봉사를 ‘누구를 구해주는 행위’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의 부족함을 나누고 채워주는 동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진 것이 많아야 돕는 것이 아니라 가진 마음이 크면 얼마든지 나눌 수 있는 것이거든요.
제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의료봉사는 모든 환자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귀한 존재로 대하는 자리이며, 고통받는 이웃에게 ‘누군가 나를 위해 시간과 마음을 써준다’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봐요. 또 어려운 이웃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사랑을 전하고, 설사 완벽하게 치료를 해 줄 수는 없지만 환자가 살아가는 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자신의 삶이 소중하고 더 나은 처치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 봉사를 하다보면 우리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많다는 걸 느낍니다. 환자 한 사람의 웃음, 아이의 작은 감사 인사, 그리고 함께 봉사하는 동료들의 헌신에서 저 역시 적지 않은 에너지를 얻곤 하지요.
저의 의료봉사 여정은 대학시절 CMSA, 즉 기독의학생회에서 시작되어 농촌과 쪽방촌, 보육원 등 저희들을 필요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습니다. 결혼 후에는 비뇨기과 의사인 남편과 함께 무의촌과 양로원 등을 돌며 의료봉사를 이어 왔는데 이런 경험들이 제가 기독여자의사회장이 된 후 봉사방향을 결정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더라고요.
Q
최근 우리나라 의료계가 여러 가지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대한기독여자의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여자의사들의 역량 강화와 권익보호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지금 배출되고 있는 여자의사 수가 전체 의사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는데 이런 상황에서 굳이 단체장 입장에서 여의사의 역량강화나 권익보호를 따로 말하는 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 개인적으로 여자여서 그런지 몰라도 여의사들의 역량강화나 권익보호는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예요. 여의사들이 겪고 있는 경력단절 문제라든지, 근무환경 개선, 리더쉽 교육 등을 통해 여의사들이 보다 큰 무대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실 우리나라 의료계는 정책변화, 환자와 의료인 간의 신뢰문제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 또한 사실 아닌가요? 이런 때일수록 저희 기독여자의사회와 같은 단체들은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환자를 돌보고, 의사들이 서로 돕고, 사회의 약자를 돌보는, 바로 그것이니 말입니다.

Q 중복되는 질문일 수 있겠습니다만 젊은 의사들이 의료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선배 의사이자 단체장의 한 사람으로서 젊은 여의사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한 어떤 방법이 있겠는지요.
저희 회원 분들 모두가 훌륭한 멘토가 될 수 있는 분들이라 각자의 현장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충분히 하셨고, 또 하고 계실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제 나름대로는 젊은 의사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현실적인 조언’과 ‘심리적인 지지’라고 봅니다. 그래서 후배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월례모임에 후배들이 오면 강의 위주의 일방향 소통 대신에 실제 현장에서 겪는 고민을 나누고 함께 해결방법을 찾아가는 시간을 갖곤 합니다. 또 SNS와 온라인 플렛폼을 활용해 해외연수 정보라든지 봉사기회, 연구협력 네트워크 공유하고자 하고 있지요.


Q 앞으로 대한기독여자의사회가 어떤 단체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특히 회장님이 주어진 임기 동안
어떤 점에 역점을 두고 일을 해 오셨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저의 가장 큰 바램이라면 저희 회원님들과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젊은 후배들이 많이 저희 단체에 들어와서 자신이 받은 은혜를 나누고, 같이 일하는 기쁨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단체가 ‘의료계 안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의료봉사뿐만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에도적극 참여하는 단체 그리고 믿음과 전문성을 동시에 겸비한 여의사들의 플렛폼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만 제 임기 동안 특히 집중하고 있는 사업은 해외의료선교 확대와 함께 청년의사들에 대한 멘토링입니다. 올해 필리핀 바세코 의료봉사는 사상 최대 인원인 36명이 참석하여 현지에서 1천 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보호종료 청년들에 대한 지원과 OCC, 전세계 어린이 선물나눔 활동 등 새로운 사회적 돌봄 프로젝트도 시작을 했지요. 이들 사업이 더욱 발전하고 확대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지요.


Q 앞서 잠깐 말씀하셨지만 얼마 전 동남아 의료봉사를 다녀 오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회장님이 벌여오신 여러 봉사활동 가운데 가장 기억나는 순간이나 생각나는 환자가 있다면 말씀해 주시고, 그 경험이 회장님의 인생과 의료인으로서의 삶에 어떤 의미로 남아 있으신지요.
예,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얼마 전 필리핀 바세코로 의료봉사를 다녀 왔지요. 이 의료봉사가 진행되는 동안 중증환자 몇 분을 보게 되어 이 분들에게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한 후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대답들을 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그럴 형편이 안 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더라고요. 그 지역 선교사님이 역량이돼서 환자들을 큰 병원에 연결해 주실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인데 그런 경우가 많지 않은 것 같아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저희로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고혈압, 당뇨 같은 만성병 환자 분들도 처음 발견되어 환자 본인이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몸이 조금 아프더라도 참고 계속 지내오다가 이번 저희 무료진료팀에 의해 비로서 병명을 알게 된 것인데 우리가 지어 준 약이 떨어지면 계속해서 먹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아 그 또한 안타까움을 자아 냈습니다. 속상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에 한계가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돌아 설 수밖에 없어 그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허기사 자신에게 병이 있다는 것과 그 병명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약을 계속해서 먹을 수 없다는 딱한 환자들도 적지 않긴 했지요.


얼마전 다녀온 필리핀 바세코 의료봉사에서 만난 11세 소년 마리나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네요. 배가 심하게 부풀어 있어 당장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병원비가 없어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요. 의사의 입장에서 정말 가슴아픈 일이었지요.
그런가하면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만난 임산부 라모스 씨는 앞서 사례와는 달리 저희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네 번째 아기를 임신했지만 초음파검사를 받은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초음파 화면을 통해 건강한 아기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맺힌 그 분의 얼굴이 떠오름니다. 그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이 곳에 온 이유’임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요.
Q
기독여자의사회 회장직을 수행하시면서 바쁜 시간을 보내셨을텐데 일과 개인의 삶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해 오셨는지요. 의사이자 한 개인으로서 행복하 삶을 위한 회장님만의 노하우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매사에 ‘내가 즐겁고 행복해야 남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일에 균형을 맞추며 살아 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은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일과 삶의 균형을 ‘시간 배분’보다 ‘마음의 균형’에서 찾고자 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5분만이라도 감사기도를 드리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지요. 또 제게는 봉사 자체가 쉼이 됩니다. 누군가를 돕는 순간 저의 고민과 피로가 줄어들고 삶의 의미는 선명해지곤 하지요. 결국 행복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서 온다는 걸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저희 대한기독여자의사회가 77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선배님들의 헌신과 기도로 이어져 온 만큼 저는 그 길을 잠시 맡아 걷고 있던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 얼마 남지는 않았지만 저에게 남겨진 임기 동안 보다 많은 회원들이 봉사의 즐거움과 나눔의 행복을 경험하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나눔’은 빨리 깨달을수록 행복이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이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_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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